내가 경험한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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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 심리센터 댓글 0건 조회 2,896회 작성일 18-09-29 19:18본문
심리상담을 하다보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매일 그런 힘든 얘기, 무거운 얘기 듣는 거 힘들지 않아요?”입니다. 저보다 상담을 오래하신 선배들이 너무나 많고, 제가 상담을 하게 된 것은 오래 되지 않은 일이라 제가 상담에 대해 무어라 말하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 경험에 대해 들려드리면 상담이라는 것에 대해 관심 갖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실까봐 나누어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는 다소 기이한 내용의 프롤로그로 시작됩니다. 타인의 얼굴을 그리는 것을 업으로 하는 화가에게, 어느 얼굴 없는 남자가 찾아온 것이지요.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얼굴 없는 남자의 제안에 화가는 난감해합니다.
“나는 일어나 작업실에서 스케치북과 부드러운 연필을 가져왔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얼굴 없는 남자의 초상을 그리려 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무엇을 기점으로 삼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기 있는 것은 그저 무無였다. 아무것도 없는 것의 형상을 대체 어떻게 빚어낸단 말인가? 더욱이 무를 둘러싼 유백색 안개는 쉼없이 모습을 바꾸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난감함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아무것도 없는 것’을 그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무언가 보이는 것이 하나라도 있어야 그것을 기점으로 해서 그리기 시작할 텐데 그럴 만한 것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 보이지 않는 대상의 주위에는 ‘쉼없이 모습을 바꾸는 유백색 안개’가 있습니다. 작가는 ‘나’라고 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닿지 않는다는 것을, 얼굴 없는 남자의 비유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아self의 모호함, 그리고 그조차도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제행무상의 철학을 담은, 간결하고도 세련된 은유입니다.
우리는 모두 얼굴 없는 남자의 처지에 처해 있습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 한 마디로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한두 가지 특성으로 명확하게 그려지시나요? 너무나 복잡하고 애매모호해서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나’라는 것의 핵심, 본질, 실체라고 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붙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잠깐 정리했다 하더라도, 이미 흘러가버리지요. 우리의 몸과 마음은 끊임없이 변하니까요. 나라고 하는 정리된 어떤 것은 애초에 없을지도 모르지요.
이처럼 나 자신에 대해서도 몇 가지 단어나 문장으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타인에 대해 어떻게 명확하게 쉽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심지어 누군가가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까지 여겨집니다. 많은 분들이 ‘상담’을 타인을 도와주는 행위로 여기고, 공부를 많이 하고 자격을 갖추면 ‘전문가’가 되어 그 도움을 잘 줄 수 있을 거라 믿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번 의문을 가져볼 만한 일입니다. 근본적으로 타인을 이해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면 도움을 준다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많이 돌아왔지만 제 경험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상담은 ‘누군가가 누군가를 돕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상담을 신청해서 상담자 앞에 앉게 된 분들은 대체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매우 곤란한 경험을 가지고 옵니다. 그런데 그 곤란함 한 가운데 매여 있지 않아 한 발 떨어져 옆에서 보는 사람은 그 곤란함에 대한 이해가 적어서, ‘이러면 되겠네.’라는 해결책 제시나 조언을 하기가 쉽지요. 그래서 친구나 가족의 조언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듣는 이로 하여금 더 외롭고 답답한 마음이 들게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상담자는 다양한 곤란함에 대해 공부하고 훈련받기 때문에 그러한 곤란함에 대해 이해합니다. 상대를 이해한다기보다는 곤란함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그 곤란함의 경험에 대해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흘러가버리는 이야기 속에서 곤란함의 순간을 포착해 더 깊게, 더 천천히 들으려 애씁니다. 그것은 매우 정성을 기울이는 행위이고 상대를 진정으로 만나는 경험입니다. 이처럼 정성이 들어간 것에는 감동이 있습니다. 그러한 감동을 나누는 것이 상담이라고 생각합니다. 곤란함이라는 재료를, 두 낯선 사람이 만나 천천히 나누는 것. 그런 과정을 통해 어떤 분들은 자신의 곤란함을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기도 하고, 새로운 느낌으로 다시 경험하게 되기도 하지요. 곤란함으로 인한 고독의 무게가 조금 덜어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너무 빨리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어떤 ‘필요’만을 나누는 관계에 익숙해진 많은 이들이 경험하기 어려운 ‘정성어린 만남’을 할 수 있는 곳이 상담입니다. 심각한 트라우마를 경험했거나 고쳐야 할 문제가 있어서 가는 곳만은 아니지요. 삶을 다르게 경험하고 다르게 만날 수 있는 장場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고정된 얼굴이 없습니다. ‘나’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우리에게 고정된 ‘나’가 없고 어느 누구도 진정 타인을 알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누군가의 지식이나 정보, 조언이 아니라 두 사람이 만남, 그 ‘사이’에서 치유된다는 것, 이것이 저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희망이라 생각합니다.
변지영.
차의과학대학교 의학과 임상상담심리전공 박사과정. 《내 마음을 읽는 시간》의 저자.